1. ‘버린 나무’에서 피어난 마음: 취미가 예술이 되기까지
내가 처음 폐목재를 손에 들었던 날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기보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주워보자’는 마음이었다. 그 조각은 정리해둔 듯한 직사각형도 아니고, 거칠게 잘려나간 한쪽 모서리는 손끝에 작은 긴장을 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나무는 처음부터 완성품 같았다. 오래된 흔적이 묻어 있는 표면, 칠이 벗겨진 결, 무엇보다도 쓸모없다고 버려졌지만 여전히 단단했던 그 질감이 내 안의 어떤 조용한 감각을 건드렸다.
처음엔 그저 취미처럼 시작했다. 조용한 오후, 아무 말 없이 사포를 들고 결을 따라 문지르기만 했는데, 그 시간만큼은 나도 나무도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색을 칠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욕심도 없이 그저 만져보는 감각. 어느 순간, 그 조각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결을 따라 뭔가 만들어볼래?” 그것이 나의 첫 폐목재 예술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는 버려진 나무를 볼 때마다 ‘이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버려졌지만 다 쓰이지 않았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나무들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내 방 구석이 작은 작업실이 됐다. 무언가를 사지 않고도 스스로 만드는 재미, 손끝에서 느껴지는 나무의 따뜻함은 어느새 내 마음까지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길을 걷다가 버려진 나무가 눈에 띄면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예전 같았으면 ‘지저분하다’고만 여겼을 나무 조각도,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을까’를 먼저 상상하게 된다. 가끔은 그냥 들고 와서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나무가 내 방에 놓인 것만으로도 묘한 에너지가 생긴다. 쓰임을 잃은 존재와, 목적 없이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 만나 어딘가로 흘러가는 시간. 예술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이 나무들을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사소한 교감들이 쌓여, 나만의 감각이 되고, 또 하나의 세계가 된다.
2. 가공되지 않은 시간의 흔적을 다듬는 일
목재는 시간의 기억을 품고 있다. 공장에서 똑같이 잘려나온 판재들과는 달리, 버려진 나무에는 늘 누군가의 손길과 이야기가 얽혀 있다. 때로는 가구의 다리였고, 때로는 간판의 테두리였던 나무. 그걸 사포질하다 보면, 칠이 벗겨진 흔적 사이로 ‘시간’이 갈라져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그 나무의 생채기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국들을 그대로 살려낸다. 정돈된 미가 아니라, 흘러간 날의 불완전함을 그대로 꺼내어 다시 들여놓는 작업. 그렇게 내 손끝에서 깎여지고 다듬어진 나무는, 새것처럼 보이진 않아도 새로운 이야기를 품은 물건이 된다.
이런 작업을 하다 보면, 나무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같이 다듬어지는 기분이 든다. 급하게 결과를 내려 하지 않고, 결 하나하나를 천천히 따라가는 감각 속에서 삶의 속도가 조절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처도 저런 나뭇결처럼 부드럽게 정리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무를 다듬는 건 어쩌면, 내 마음의 결도 다듬는 일인지 모른다.
3. 결과보다 감각: 손끝에서 배우는 진짜 지속 가능성
폐목재 예술을 취미로 하며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살까, 말까’로 시작되던 판단이, 이제는 ‘이걸 어떻게 다시 쓸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나무뿐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그런 감각이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손으로 무언가를 다룬다는 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사용’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다. 나무 한 조각이 컵받침이 되었다가, 거울 틀이 되었다가, 결국은 액자 틀로 끝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배웠다. 모든 것은 한 번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가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 결과, 나의 집에는 점점 ‘구입한 것’보다 ‘만든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굳이 새로 사지 않아도 내가 손으로 만든 것이 가장 잘 맞고, 무엇보다 애착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애착은 내가 가진 물건을 더 오래, 더 아끼며 사용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지 환경 보호라는 개념보다 더 깊은, 생활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태도였다.
특히 버려진 것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행위’는 어쩌면 삶을 대하는 방식 그 자체와 닮아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낡고 틀어졌어도, 내 손으로 다시 쓰임을 부여하는 그 과정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해서도 같은 관용을 갖게 한다. 예전에는 뭐든 새로 사야 직성이 풀렸다면, 이제는 조금 부러지고 닳은 것들도 '고쳐 쓰자'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폐목재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내 삶의 태도를 바꿔준 은근한 스승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감각을 한 번 익히고 나면,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시간과 손길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진짜 지속 가능성이라는 걸, 이제는 손끝으로 안다.
4. 나만의 취미로 완성하는 ‘아주 사적인 전시회’
처음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작은 공간이 하나의 전시장이 되었다. 창가 아래 놓인 작은 우드 트레이, 화장실에 놓은 자작 나무 브러시 꽂이, 벽 한 쪽에 걸린 목재 캘리그래피 액자. 하나하나의 물건에 내 손길과 시간이 묻어 있다.
방문한 친구가 말한다. “이거 어디서 샀어?”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웃는다. ‘나무 줍다가 만든 거야’라는 말을 하면 대부분 놀란다. 예쁘다는 말보다 더 좋은 반응이다. 그것은 곧 내가 쓴 시간, 감정, 손끝의 무게가 누군가에게도 느껴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은 공간이 세상 어디보다 나다운 곳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더 천천히, 더 오래 만들고 싶다. 비록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라고 부르기엔 조잡할지 몰라도, 그건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니까. 취미로 시작한 나무 작업은 이제 내 일상의 한 장면이 되었고, 이 평범한 전시회는 나에게 작은 성취와 큰 위로를 동시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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