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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 바뀌는 순간

다 쓴 향초 유리용기, 브러시 정리함으로 재탄생

by choi-kkomi23 2025. 5. 5.

1. 남은 잔향보다 더 오래 남는 것: 유리용기를 다시 바라보다

향초를 다 태우고 난 뒤, 유리용기에 남은 그 은은한 향기는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여운이 사라지면 곧바로 유리용기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버릴 것과 살릴 것’을 가르는 결정적 찰나다. 유리용기는 단지 향초의 껍데기가 아니다. 조심스레 따뜻하게 녹인 왁스를 받아주고, 기울어짐 없이 빛을 품었던 이 작은 그릇은 여전히 내 공간에서 역할을 할 자격이 있다. 나는 이 유리용기를 바라보며 늘 ‘이건 뭐가 담기면 좋을까’를 상상한다. 그 상상의 결과 중 하나가 바로 브러시 정리함이다. 화장대 위에 널브러진 아이브로우 브러시, 뷰러, 립 라이너, 립 브러시 등은 늘 작은 정리함을 갈망하지만, 어설픈 플라스틱 제품은 내 공간의 무드를 깨곤 했다. 향초 유리용기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오브제다. 버리기엔 아깝고, 쓰지 않기엔 더 아까운 존재. 그래서 나는 향초를 다 쓰면 유리용기의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2. 남은 왁스 처리의 기술: 깨끗이 비우는 것이 첫 시작이다

유리용기를 브러시 정리함으로 바꾸려면,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남은 왁스 처리’다. 이 과정을 대충 넘기면 용기의 미세한 끈적임이 브러시에 묻고, 먼지를 끌어당겨 결국 다시 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첫 단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물을 붓거나 냄비에 넣어 녹이지만, 나는 시간을 들이는 자연 해동법을 선호한다. 남은 왁스가 유리 벽에 붙은 상태로 며칠 방치되면, 계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화되며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면서 아주 쉽게 떨어져 나간다. 얇은 나무 막대를 이용해 천천히 밀어내면, 별도의 열처리 없이도 말끔히 분리된다. 이 방식은 유리에 흠집을 남기지 않고, 손을 데일 염려도 없다. 이후에는 종이타월에 식초를 묻혀 안쪽을 한 번 닦아내는데, 이 과정을 통해 향초 잔향까지도 제거된다. 이처럼 단순히 왁스를 ‘녹이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접근하면 유리용기는 더 오래, 더 깨끗하게 다음 용도를 준비할 수 있다.

3. 브러시에 맞는 공간 설계: 무심한 듯 디테일하게 채우기

유리용기는 보기에는 단순한 원형 혹은 사각의 그릇이지만, 브러시를 담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나는 정리함으로 사용하기 전에 먼저 내 브러시들을 바닥에 펼쳐둔다. 이 중 자주 쓰는 것과 가끔 쓰는 것을 구분하고, 길이별로 나눈 다음, 실제로 자주 잡는 순서대로 용기 안에 넣을 배열을 상상한다. 예를 들어 립 브러시는 자주 쓰지만 크기가 작기 때문에, 용기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속을 채워주는 충전재가 필요하다. 나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오래된 천을 조그맣게 잘라서 돌돌 말아 넣거나, 다 쓴 쿠션 퍼프를 잘게 잘라 바닥에 깔아두기도 한다. 이 충전재는 단지 높이를 맞추는 용도가 아니라, 브러시가 흔들리며 부딪히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재 역할도 한다. 이렇게 세심하게 채워두면, 매일 쓰는 브러시를 꺼낼 때마다 쿵쿵 소리 나지 않고, 마치 무대에서 조용히 조명을 받는 배우처럼 단정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리는 단지 수납이 아니라, ‘존재감을 줄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유리용기를 통해 배운다.

4. 감성의 정리 철학: 인테리어 오브제로서의 유리용기

화장대는 내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공간이다. 그 위에 놓인 유리용기는 단지 정리함이 아니라, 나의 기분과 컨디션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된다. 향초 유리용기는 그 자체로 이미 감성이 녹아든 물건이기 때문에, 별다른 장식 없이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아주 작은 변화를 준다. 투명한 유리용기에는 얇은 은색 철사를 감아 손잡이처럼 만들거나, 손수 만든 라벨을 붙여 브러시 종류를 구분하기도 한다. 혹은 계절마다 천 조각이나 마스킹 테이프로 가볍게 테두리를 꾸미기도 한다. 이 작은 변주는 향초 브랜드의 흔적을 지우는 동시에, 나만의 브러시 정리함으로 재탄생시키는 의식 같은 과정이다.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나에게는 과한 수납함보다, 이런 유리용기 하나가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한다. 인테리어는 결국 누군가가 바라볼 것을 의식하는 공간이지만, 정리함은 나만이 들여다보는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유리용기를 내 기분에 맞게 꾸미는 데 아낌없이 시간을 쓴다.

5. 반복 가능한 루틴으로: 한 번의 리폼이 남긴 순환의 즐거움

이런 리폼은 단발성 작업이 아니다. 향초 하나가 다 타면, 또 하나의 브러시 정리함이 생기고, 다시 그게 다 채워지면 다른 용도로의 전환을 고민한다. 누군가는 쓰고 버리는 것을 정리라고 여기겠지만, 나는 쓰고 다시 쓰는 순환을 정리의 본질로 생각한다. 유리용기를 브러시 정리함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마스카라 전용 홀더로, 또 그다음에는 립밤 샘플 병들을 모아두는 수납용기로 바꾸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어떤 공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정리도 유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순환의 정점에는 늘 향초 유리용기가 있다. 투명하고 단단하며, 냄새를 담고 빛을 품는 이 물건은 수없이 많은 형태로 내 삶 속을 순환한다. 정리의 철학은 결국 ‘없애는 것이 아닌, 다시 의미를 주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나는 소비자에서 창작자로, 수납에서 큐레이션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다 쓴 향초 유리용기, 브러시 정리함으로 재탄생